신과 마녀 [달]

*자캐용 글
*언젠가 나만의 글로 쓸 캐릭터들의 이야기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조각할 이야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오늘의 달이 점점 사라진다. 밤이야 늘 오고 달은 차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하니 뭐 하나 다를 건 없지만 그들이 사는 장소와 와 시간에서만큼은 달랐다. 하나는 자신을 신이라 했고, 하나는 마녀라고 불렸으니 신과 마녀가 대화 하기엔 결코 가벼운 대화는 아닐터였다.

"달이 예쁜데?"
신이라는 자가 사라지는 달을 보며 잔을 들었다. 그는 달을 좋아했다. 언젠가 이유를 물으니 늘 낮에도 밤에도 떠 있으면서 날마다 모습이 바뀌는 것이 흥미롭다고. 마치 자신 같다며. 늘 있으나 어쩔땐 존재를 드러내고, 어떨땐 존재를 모르는 게 낭만적이지 않냐며 술을 들이키던 자는 옆의 마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마녀는 헛소리를 한다며 무시해버렸지만.

"그믐달이야."
마녀는 신이 창조한 그 무엇에도 딱히 애정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자신이 쌓아올렸던 것들은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에 눈을 돌렸다.

"언젠가 무너질 왕조였어."
신은 자신을 이해하면서도 뭘 해주진 않았다. 물론 마녀가 원하면 뭐든 들어줄 터였겠지만 마녀는 신의 말을 잘 믿지 않아 하나는 자발적 방관자, 하나는 반강제적 방관자가 되어야 했다.
"네가 좋아했던 인간들의 문명이야."
"알아."
한 때는 자신과 같이 이 문명을 누렸으면서. 문화도, 음식도, 복식도, 전부를 자신과 누려놓고 이젠 질린다며 망해가는 문명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게 이곳도 잊히겠지. 신의 서에 한 줄이라도 쓰이면 다행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적겠지. 그저 존재했다 사라졌다고. 그자는 뒤를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앞만 보고 적당히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은 달랐다. 늘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 했다. 안전한 세상과 즐겨먹었던 음식들, 친해진 사람들을. 늘 자신만 과거의 인물들을 그리워한다. 자신의 유일한 약점은 이것이라고 주변에서 계속 말해주지만 자신은 알면서도 그들을 잊을 수 없다. 자신마저 그들을 잊고 지낸다면 그들의 존재를 기억해주겠는가. 그래서 자신의 약점이 된다해도 그들을 잊고 살 순 없었다. 그저 괜찮아질 때 까지 묻어두는 것뿐.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달의 바뀌는 그 모습 하나 하나에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
"너에게 인간의 문화는 의미 없겠지만, 나와 그들에겐 영원한 세상이야."
마녀가 짜증을 내며 신의 멱살을 잡았다.
"왜 화를 내는 거야? 늘 내가 했던 일이잖아. 익숙해져야지."
오히려 마녀를 이해 못 하겠다며 신은 얌전히 멱살을 잡힌체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인구는 그대로고, 살던 인물들도 그대로야. 자기가 원하던 맛집도 그대론데. 뭐가 문제지?"
"..됐다, 말을 말자." 맥이 빠져 멱살을 틀어쥐던 손을 놓자 신이 옷을 바라봤다.
"이런, 아끼던 옷인데. 구겨졌네."
마녀와 신은 이런 점이 맞지 않았다. 무엇 하나 정 반대라 같이 있으면 마녀의 속만 뒤집어졌다.
"버려야겠어."
그저 구겨지기만 한 옷이다. 아끼는 물건이 상하면 고쳐보려는 자신과 달리 상했다며 버리는 신과 대체 무슨 얘기를 할까. 애초에 사라지는 문명도 이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이 마녀를 괴롭게 했다. 너한테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었어, 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푸념일 뿐이었다. 혼자서 맛집이라는 가게에 그저 줄을 섰을 뿐이었다. 마침 자신 차례에 왕궁에서 먹겠다는 다른 귀족과 왕궁 식구들이 먹겠다며 자신 앞에서 새치기를 하더니 남은 것들을 웃돈을 주고 다 가로채 버렸다. 예약이라도 하고 싶어 갔더니 앞으로 왕궁에서만 일하라며 가게 주인까지 데려가 버렸다. 사지 못 한 사람들은 왕궁이 이러는 게 한 두번이냐며 자신에게 더 맛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며 위로했지만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였다. 그래서 기분 상한체 곧 바로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 자신의 애인이자 신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며 푸념한 것 뿐이었는데.

오히려 애인은 그런 일을 겪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었다가 자신에게 왕궁을 폭발 시켜 버리길 원하냐 물었다.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가도 상상만 하고 끝낸 일이라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기분은 상했지만 가게 주인에겐 좋은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은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며칠 후 다시 나간 광장은 시끄러웠다. 나라에 흉조가 들었다며 제사를 지내고 신의 서를 읽어야 한다며 난리였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말을 주워들으니 나라에 흉조라고 여겨지는 달이 붉어지고, 해가 검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보통 그런 불길한 소식은 왕궁 내에서도 입단속을 시킬 텐데 어떻게 들었냐하니 며칠전 광장에서 정신 나간 광대 하나가 큰 소리로 떠들었다고 했다. 어찌나 큰 소리로 떠들던지 입만 열었는데도 왕궁에서 생생하게 다 들릴 정도였다고 했다. 불길한 예언을 소리치며 마을의 종말을 얘기 했는데 이상했던 건 왕궁이 망해도 백성들은 여느 때와 똑같이 살 거라는 소릴했다는 것이다. 왕궁에서도 이런 자를 잡아 처벌하려고 했지만 볼 때 마다 놓치고, 잡아도 사라지며, 왕궁에서만 광대가 말한 환영이 계속 보인다며 더 피폐해지고 있다고.

며칠 내내 왕궁을 뛰어다니며 환영과 저주 같은 예언을 하는 광대로 인하여 왕궁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누가 광대인지 몰라 서로에게 칼을 겨누었고, 왕궁에서만 보이는 환영은 밤이고 낮이고 계속되어 나랏일도 중단 되었다. 높은 급료와 이 사태를 해결하면 큰 상을 내린다고도 하였으나 누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냐면서 다들 피했고,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궁을 나오고자 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모든 왕궁의 문은 지키는 이가 없는데 누가 막은 것 처럼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왕궁을 뛰어놀던 광대의 웃음소리가 멈추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세상이 낮인지 밤인지 구분되지 않자 그저 잠만 쏟아졌다. 다들 이상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이 빠져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일어났을 땐 모두가 쏟아지는 신문과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왕궁은 건재한데 안에 사람은 없었다. 갑자기 모두 증발해버린 것 처럼.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왕궁을 다 뒤져도 그들의 흔적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왕궁만 남은체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이제 신과 마녀 뿐이다.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마녀의 음성이 높아지자 집 전체가 흔들거렸다. 감정을 주체 못하고 왜 그랬냐며 소리치자 흔들림을 이기지 못 한 가구들이 쓰러지고 무너진다. 그러나 마녀 앞에 있는 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었다. 
"그들이 너를 힘들게 했잖아."
"내가 힘들었다고 왕을 죽여? 네가 뭔데?"
"뭐긴, 자기 애인이지." 다정하게 다가와 마녀의 손을 잡은 신은 잘했다고 칭찬을 바랬다.
"네가 그들을 죽인 이유는 그 때 나랑 가지 않은 너를 탓하는 건데 왜 그들이 벌을 받지? 그리고 네가 거기에 있었다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마녀가 겪은 일이 싫었다면 시간을 돌려 그 일을 막을 힘도 있으면서 왜 그렇게 하지 않고 화풀이를 했는지. 이유라도 듣고 싶었다. 늘 들어도 납득도, 이해도 가지 않지만 이러는 이유는 알아야 했다. 그래야 더 이상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을 거니까.

"나는 늘 자기가 우선이니까. 만약 그날 내가 있었다면 거기에 살아남을 사람 아무도 없었어."
"제발 헛소리 좀 그만해. 언제까지 나를 기준으로 선과 악을 나눌 생각이야??"
"평생을." 마녀의 물음에 신은 일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해와 달의 위치가 바뀌고, 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집어 질 때 까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내 말대로 된다고 해도 영원히."
평범한 사랑 고백이었어도 이렇게 불쾌했을까.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스스로 자신을 모시겠다며 손에 입 맞추는 장면 하나까지 이렇게 역겨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더 역겨운 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자를 진심으로 싫어할 수 없다는 것이 마녀를 더욱 괴롭게 했다. 이 이상한 사랑에 빠져 언젠가 자신도 이게 익숙해질까봐. 자신은 그와는 달라야 했다. 그는 평생을 자신을 사랑하지만 자신은 평생을 그를 사랑하지 않거나 애증을 느끼면서.
"나는 죽어도, 죽었다 깨어나도 너를 사랑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 거야."
상처를 쉽게 받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상처 받아 자신을 떠나는 가능성도 생각했다.
"그렇게 해. 자기는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나는 늘 맞출게."
..자신을 쉽게 떠나는 건 오래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사랑에 빠지는 건 막아야 했다.

"..나는 네가 진짜 싫어."
"나는 좋아."
"넌 최악이야."
"응, 알아."
"..다음엔 그러지마."
"그건 장담 못 해."
"짜증나."
한 명이 더 뻔뻔하고, 한 명이 덜 무자비했다면 둘은 세상이 말하던 사랑을 하고 있었을까. 마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알아 한숨을 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부터는 실수로라도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마녀가 방으로 들어가자 남겨진 신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거기 있었으면 왕궁뿐만이 아니라 거기 있던 사람을 다 죽였겠지."


사랑과 애증이란 감정이 모이면 제 자캐처럼 됩니다. 짧든 길든 원하는 거 있으면 써서 올릴것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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