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란유단 [봄]
자신을 괴롭히던 괴물도 죽이고, 누명도 벗고, 여우도 가게를 넘기고 하늘로 올라가자 남은 건 자신과 그 밑의 요괴들 뿐이었다. 이젠 억울하게 죽임당하지 않는 건 좋았지만 그래도 일은 있어서 그냥 그렇게 살았다.
여전히 자신은 이상한 걸 보고, 그 일을 해결해야 해서 이젠 여우가 없는 서재에 주말이면 잠을 자는게 이젠 익숙해져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저는 인간이었으니 나이를 먹었다. 처음엔 비슷한 또래로 느껴지던 요괴들보다 외적으로 늙어가자 모두 웃어댔다. 이제 자신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갔지만 그들은 그대로였다.
늙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 마저 이제 늙어 죽으면 이 가게는 어떻게 될까. 그 땐 여우가 내려와서 잠시 봐주려나. 그러다 내가 또 오면 물려주고 가려나. 하는 생각.
나이가 드니 여러 생각이 다 든다. 다 나보다 잘 할테지만 이젠 내가 당신들보다 훨 늙어보여서 알바냐 직원이냐 하던 것이 누가보면 주인으로 생각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 사이 찻집은 자리를 잡았고, 엄청난 괴이도 많이 없고, 평화로운데 오늘따라 왜 이리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 늙어버린 몸을 툭툭 두들기며 일어났다.
"아이고.. 허리야.."
언제까지나 젊지 않을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머리에 눈이 내리는 거 보면 신기하다. 이렇게 늙어 죽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해서.
"단아! 단아!!"
익숙한 쌍둥이들이 후다닥 올라와 자신에게 말을 건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손주를 조금 일찍 본 할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구는거냐 하겠지만 그럴 때 마다 유단은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제일 어린 건 자신이었고, 그건 평생 변하지 않을테니까.
"왜? 또 재밌는 거 찾았어?"
천천히 일어나 쌍둥이들을 따라 계단으로 내려간다. 이젠 계단 오르 내리는 것도 쉽지 않아서 1층에 작은 방을 하나 달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일어났느냐?"
"어어, 그래."
흑요가 자신을 맞으며 아침부터 소화가 잘되는 식단을 부러 내놓는다. 그것이 좋긴하지만..
"..우리 식비 또 구멍났어? 채식보단 고기 먹고 싶어."
"어린 녀석이 투정부리는 것도 많구나! 이제 슬슬 채식 할 시기라니까!"
"저기, 그래봤자 외양은 내가 더 많거든? 그러니 고기 좀 주지?"
"흥, 육고기 보단 생선이다. 우리보다 한참 어린데 겉만 잔뜩 늙어선!"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못 이기는 척 고기를 슬쩍 꺼내는 거 보면 젊을 때 돈을 좀 더 벌긴 잘 했다는 생각도 든다. 피식 웃고 식탁에 앉는데 옆의 도씨도 앉아 안부를 묻는다.
"어때, 간밤에 잘 잤어?"
"이젠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힘드니 1층으로 방을 좀 옮겨야겠어."
"단이 많이 늙었네.."
"맞아요, 예전엔 막 우당탕탕 뛰어다니셨는데."
"그래, 젊을 때 뛰어다녀서 지금은 몸이 쉬라고 난리다."
밥이나 마저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딱히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단아! 우리 먹고 산책가자!"
"산책, 좋지. 대신 천천히 해야해. 이제 조금만 무리해도 숨이 차더라고."
"그러길래 꾸준히 산책하자 했잖아! 일주일에 3번만 나가니 그렇게 되지!"
"그래도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양호한건데 좀 봐주라." 비식 웃으며 밥을 다 먹고 일어났다.
"혹시 손님오면 가게 잘 지키고, 괴이오면 맞아주고. 알았지?"
"너보다 우리가 여기 더 오래 살았다." 흑요가 기가찬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이젠 인간인 내가 더 늙었으니 이때 생색 한 번 내보는 거지."
"말이라도 못하면. 연락처는?"
"누굴 치매 노인으로 봐? 폰도 있고 기억력도 아직 쓸만해."
"그럼 그 목도리라도 벗던지. 여름이다, 여름."
"그런가." 천천히 목도리를 푸는 손에도 어느새 주름이 졌다. 열심히 산 건 손을 보면 알 수 있다더니.
"다녀올게." 목도리를 의자에 조심히 걸어두고 쌍둥이들을 따라나섰다. 옛날엔 가게만 오려면 이상한 것을 달고 왔었는데. 이젠 자신에게 달라붙어도 그러려니 할 정도다. 둔해진 건지 아님 너그러워진건진 모르겠지만 자신은 이것도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치열하게 사는 대신 여유로워져서 받아들이는 게 다른 걸지도.
"안녕하세요, 어르신."
"네, 안녕하세요."
가게를 보면서 늘은 건 확실히 사회성이라고나 할까. 인사하는 사람에게 마주 웃으며 인사하니 어느새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조금씩 안부를 주고 받는다. 모두 그런 상황에 죽을 때가 왔다고 웃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친해져야 한 번이라도 더 가게에 놀러올테고 그러면서 장사도 좀 하고. 가끔 사주고 팔기도 하고.
"이리로 가자!"
"이리로요!"
양쪽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이끈다.
"천천히 가라, 천천히."
오늘도 반월당 식구들은 사이가 좋다며 다들 부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것저것 손에 들려주었다. 늘 인기 많은 쌍둥이들 덕에 오늘도 간식을 얻어왔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도깨비가 왔냐며 맞아준다. 옛날에는 도깨비보고 삼촌이라 한 것 같은데. 지금은 도깨비와 자신을 보면 도깨비가 자신을 삼촌이라고 불러야 할 상황이다. 이렇게 천천히 삼촌에서 아버지가, 아버지에서 할아버지로 바뀌겠지. 자신이 가장 늦게 태어나 가장 빨리 잠든다.
여우가 없고 자신이 없어도 잘 지낼 요괴들인 건 알지만 이제야 나이가 들어 먼저 떠나갈 자신과 남겨진 이가 가끔은 눈에 밟힌다. 누가 들으면 사서 걱정한다고 하겠지만 자신은 어느덧 중년이라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다. 눈도 침침해서 자리에 앉아 눈을 문지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시선을 돌렸다.
자주 오던 손님들이다. 벌써 장사 할 시간인가 싶어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아저씨! 오늘도 계시네요?"
"그럼 제가 어디있나요?"
반갑다며 웃는 손님들이 인사하자 유단도 웃으며 답했다.
"아저씨 부자죠?"
"부자라, 글쎄요. 다행히 굶어죽진 않네요."
자리에 앉는 손님과 대화를 하며 주문을 받으려는데 한 손님이 묻는다.
"아저씨, 아저씨 진짜 잘 생기셨는데 아세요?"
"주름진 노인이 뭐가 잘 생겼나요. 어디가서 그런 말 하면 맞아 죽습니다."
피식 웃으며 주문을 받자 단골 손님 답게 자주 먹는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했다.
"아닌데! 아저씨 진짜 잘생겼는데!"
"그렇게 말해도 서비스는 없어요."
"쳇, 안 통하네."
손님들이 장난스레 깔깔거리다가도 유단을 향해 엄지를 들어보인다.
"그래도 사장님 진짜 잘생겼어요! 완전 꽃중년!"
"고맙습니다."
쑥쓰러워서 인사만 하고 부엌으로 가니 귀가 밝은 것들이 들었는지 웃음을 꾹 참아낸다.
"참지 말고 그냥 웃어. 어린 손님들의 장난에 넘어가진 않으니까."
"에이! 단이 정도면 잘 생겼지! 솔직히 눈가에 주름 밖에 없잖아! 그 정도면 동안이야!"
"동안은 너네 같은 요괴들을 말하는 거고."
"그래서 주문은?" 재밌다며 웃다가 주문을 묻는 흑요를 향해 주문을 말하고 슬쩍 운을 띄웠다.
"늘 드시는 거. 배고프신 거 같으니 서비스도 좀 챙겨드려줘."
"그래, 우리 사장한테 듣기 좋은 소리라도 했으니 그 정도야."
"이제야 사장이냐." 햇수로는 벌써 몇십년인데 중년이라도 어리다며 사장님이란 소린 잘 안하는데.
"근데 단이 형님 인기 있는 거 진짜 모르세요?" 채우가 슬쩍 물었다.
"내가?" 진짜 처음 듣는 소리라 또 놀리나 했다.
"진짜 몰랐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다 솔직히 유단이랑 얘기 해보려고 하는데!"
"이런 얼굴도 수요가 있는데! 왜 나는!"
"오라버니는 도깨비면서 뭘 그런 거에 신경을 쓰십니까. 그리고 저걸 좋아하는 것도 신기합니다. 그냥 기생오래비 아닙니까?"
"..언니, 그것도 지금은 잘생겼다는 뜻이야."
"그러냐?"
"옛날엔 어떤 뜻이었는지 잘 알겠네." 유단이 웃다 가게로 돌아가려는 걸 쌍둥이들이 막아선다.
"왜?"
"단이는 오늘 많이 움직였으니 쉬어도 돼!"
"그래?"
"네! 위에 가서 쉬고 계세요."
"그래, 필요하면 부르고."
쌍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인기라. 그런 건 생각 못 했는데. 오히려 살아남기 바쁘고 가게에 바빠서 미뤄둔 게 생각났다. 청춘을 이렇게 날릴거냐며 여기저기 소개팅도 들어오고 선도 봤지만 인복은 딱 여기와 가족까지 였는지 관계는 더 나가지 않았다.
뭐, 나름 다행아닌가. 자신은 요령도 없어서 둘 다 한번에 잘하긴 힘들테니. 그리고 이 외모로 넘어올 사람이 있기야 하겠나. 인상이 무섭다고 도망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책상에 앉아 있다 작은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데 나이가 들었다는 걸 증명하듯 눈가와 입가에 주름이 새겨지고 있었다. 흰머리도 나니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정말 끝이 오는구나 싶어서 괜히 시름에 잠겼다. 나 죽으면 장례는 얘네가 치뤄주나? 나 생명 보험 들어놨던가. 이 참에 보험 정리를 좀 해둘까.
인간으로 환생 안 하면 어떡하지. 여기 진짜 망하나.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보험이나 죽음에 대해서만 걱정을 할텐데 늘 애매하게 발을 걸치고 있다보니 죽어도 유령으로 남아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려 줄 자식이라도 있어야 했나?" 언젠가 본 드라마에선 자식 대대로 도깨비 하나를 평생 책임지더니만 인간은 하난데 요괴가 넷이라 더 복잡하다. 유언장이라도 만들어 놓을까? 변호사도 찾아가야겠군.
"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옛날에 접어놨던 종이 여우는 이제 종이가 되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종이로서 가만히 있을뿐.
"나 죽으면 여우한테 가서 나 다시 환생하고 클 때 까지만 잠시 맡아달라고 전해줄래?"
손가락으로 툭툭치다 그만뒀다. 이래봤자 뭐가 바뀌나. 방법은 뒤가 아닌 앞에 있는데. 일단 오늘은 쉬자고 생각하며 옛날 여우가 눕던 곳에 누웠다. 여우가 오면 마음대로 썼다고 화를 내겠지만 어쩌겠는가. 그 동안은 자신이 주인이었는데.
하품을 하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던데 자신은 잠이 더 늘었다. 마치 영면을 준비하는 것 처럼. 요새 잠을 설친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자면서 가는 게 호상이라곤 하지만 그 호상이 당장은 필요 없어서. 이대로 편히 잤다가 못 일어나면 그건 또 문제라.
"아, 안되겠다."
잠시 눈 좀 붙이려는 것도 포기하고 다시 책상에 달려가 공책을 꺼냈다. 그리고 볼펜으로 꾹꾹 눌러담은 유언장을 썼다. 내일 죽지 않으면 잘 보관해둬야지. 보관해뒀다가 가기 전에 영으로 남아서 애들한테 읽어보라 해야겠다며 쓴 공책을 덮고 누웠다.
"진짜 내가 늙어죽네." 조용히 중얼거리다 체력이 다했는지 잠시 낮잠에 빠지고 말았다.
"..꽃밭이라니."
다른 때에 꽃밭과 강이 나왔다면 편하게 쉴 텐데 나이가 들어 보이는 풍경은 그리 기분 좋진 않다. 서천꽃밭과 황천강이 생각나서 더 그럴지도. 요새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을 했나보다. 애써 머리를 비우려 꽃밭에 드러누웠다. 이러고 있으면 누가 날 핍박할 것 같은데.
"바보."
응, 이렇게. 게다가 이렇게 끝나지도 않고. 꼭 한마디 더 하겠지.
"멍청이."
"?"
내 목소리는 아닌데. 그럼 오랫동안 못 들었던 그 목소리인가. 생각보다 안 본지 오래되어 목소리도 잊겠다 싶었는데 귀와 머리는 아직 멀쩡하군.
"오랜만에 꿈에 나와서 늙은이한테 욕이라니. 거 참 예의가 없는 여우시군요."
"나이든 티 내지 마십시오. 저보다 한참이나 어리신 분이."
"요괴한테 50대는 갓난아이 같겠지만 인간에게선 이 정도면 중년이라 하지요."
"..그 사이 나긋하게 구는 법이라도 배우셨습니까?"
"그땐 어렸고 지금은 나이가 들었는데 여전히 그렇게 살겠어."
"..제 얼굴 안 보실겁니까?"
"천호께서나 늙은 인간 얼굴 보지 마십시오. 다 늙어 볼 것도 없습니다."
피식 웃으며 소리가 나는 반대쪽으로 돌렸다.
"내가 죽음에 가까워져서 너를 불러낸 것 같은데 꿈에서도 너 괴롭게 할 생각 없어. 돌아가도 돼."
아님 내가 힘들어서 네가 나오는 꿈을 꾸는 걸 수도 있고.
"..저한테 하실 말 없습니까?"
"음.. 생일 축하한다?"
"제가 그 말 듣고 싶어 왔겠습니까??"
어째 이건 날이 갈수록 포악해지냐. 노인 공경도 안하고. 자신의 어깨를 휙 잡아 돌리자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본다.
"음.. 문상 와라?"
"..진짜 미치셨습니까?? 제 앞에서 죽는다는 말을 그렇게 하신다고요?"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자 내가 실언했다며 사과했다. 그래, 넌 내가 죽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데.
"그래, 우리 만두께선 어떻게 오셨어?"
꿈에서 자는 것도 포기하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꿈인데도 앉는게 힘들다니. 진짜 몸을 많이 쓰긴 했구나.
"오면.., 안됩니까?"
"아니, 잘 지내고 있다고 소식 들었는데 갑작스레 와서 내가 널 또 불렀나 했지."
"..그런 거 아닙니다."
"고맙다."
"갑자기 뭐가요."
"나 도와준 거."
생각해보면 자신은 여우의 첫 친구도 아니고 그냥 영혼의 조각으로 계속 환생한 것 뿐인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살게 해 줘서. 그러니 다 끝났으니 갔겠지. 후련하게. 그렇게라도 니가 편하면 됐다. 어릴 땐 나만 힘들어서 널 생각 못 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네가 간 게 맞더라.
"이 힘든 걸 어떻게 천년동안 했어. 심지어 주기적으로 죽어가면서."
"..."
"늙어죽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네가 한 번을 안 와서. 와도 말도 못하고."
주름진 손으로 조심히 여우의 손을 잡아 토닥거렸다.
"수고했어, 그동안. 정말."
이 여우는 그동안 자신만 보면서 살았겠지. 어떻게든 살리고 살려서 그 동안의 누명을 벗기고 이유라도 들으려고. 그게 끝났으니 이젠 홀가분해 질 때 됐지.
"네가 없어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 초보 사장인가봐."
"원망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데 일이 해결됐다고 바로 가버린 거."
"네가 얼마나 여기가 지겨우면 그랬겠어. 이젠 이해해. 네 친구도 없고, 대흉악신도 없앴는데 네가 여기 있을 이유가 어디겠어."
"..가족도 못 만든건요? 가게에 치이고 괴이에 치여 자신의 삶도 못 누렸잖습니까."
"음..솔직히 딱히 가정을 바란 적도 없지만 나는 요령도 없어서 둘 다 했으면 둘 다 못 했을 거야."
"..나는 당신이 나를 원망하길 바랬습니다."
"왜?" 탓하려는 게 아니었다. 정말 궁금해서. 왜 그렇게까지 내 원망을 듣고 싶나 싶어서.
"나는 당신을 원망했으니까요. 나를 죽이고, 나를 두고 계속 죽으니까!! 그게 너무 원망스러워서 당신도 이렇게 나를 원망하면서 나를 잊지 말라고 그렇게 매정하게 떠났는데!! 당신은 왜 내가 없어도 괜찮습니까? 저는 당신에게 그 정도도 가치가 없습니까? 저는..! 당신에게 뭔데요!!"
자신을 원망하라고 해놓고 괜찮은 나를 원망한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나는 어른이 되었고 너는 어릴 때 그대로구나. 그럼 이젠 어른이 된 내가 너의 투정을 받아줘야겠지.
"미안하다." 나를 꽉 잡는 손길을 그저 받아들이며 품에 안아 달랬다.
"사실, 많이 그리워했어. 원망도 하고. 보고 싶고."
"그럼 왜 안 불렀어? 한번쯤은 다시 오라며 억지 쓸 수 도 있잖아! 하루라도 나 없이는 안되겠다며 짜증내고 울고 불고 할 수도 있잖아! 나를 잊었어? 나는.. 계속 네가 불러주길 기다렸는데.."
"처음엔 그렇게 할까 하다가 힘들게 산 애가 이제야 편하다는데 어떻게 또 억지로 끌고 내려와. 그리고 계속 너 부를까 했어. 이번 사건만 끝나면 너 불러야지, 이번만 끝나면 난 못하겠다하고 바닥에 드러누워야겠다, 넌 또 나 보고 이런 것도 못하냐며 뭐라 하겠지만 어쩌겠어, 나는 네가 없으면 안되는데."
"근데 왜 안 불렀어? 이렇게 늙을 때 까지 왜 안 불렀어? 오기야?"
"아니. 그냥. 그러다가 네가 언제든 내려와도 될 만큼 안정될 때 부르고 싶었어. 네가 일 안해도 될 만큼 가게도, 괴이도 멀쩡해서 네가 여길 일하는 곳이 아니고 쉬는 곳이라고 생각하길 바랬는데 그러기엔 너무 오래 걸렸더라고."
내가 여우를 더 꽉 끌어안았다. 처음으로 이렇게 안아본다. 그만큼 안아보고 싶었다.
"여우야, 생각해 봐. 꽃이 진다고 봄을 잊진 않잖아. 너는 나에게 있어서 늘 봄이었어. 생명을 지켜주고, 힘들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그런 화사한 봄."
"..그거 고백입니까..?"
"..그렇게 되나?"
"..일하는 게 보기 싫었던 건 제 손에 물 묻히기 싫었다는 말로 알아들으면 됩니까?"
"음.. 그렇게도 되겠지?"
"..저희 언제 결혼합니까? 내일?"
"??, 진정해라 여우야. 내가 내일 모레 어찌 될 지도 모르는데 결혼이라니."
"왜 못합니까? 지금 50이라고 해도 30년은 더 살 수 있는데??"
"그럼 나랑 30년 살고 나머지는 어떻게 살게? 사별했다고 평생 혼자 살게???"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요. 천년동안 계속 기다렸으니."
"쓸데 없는 소리 마. 그랬다간 내가 저승가려다도 피 눈물 쏟으면서 다시 올 거 같으니까."
"그 정도로 절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여우가 놀랍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야! 그럼 결혼까지 했는데 혼자 남은 거 걱정하지 안하냐? 내가 그렇게 인성에 문제 있어?"
"..아니요, 그냥 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저랑 같은 마음이란 게 기뻐서.."
"...여우, 너 몇 살?"
"왜요?"
"너 솔직히 말해. 너 천 살 아니고 열 살 먹었지?"
"열 살 먹은 아이가 어떻게 결혼하자고 상대를 꼬드깁니까?"
"..네가 그러고 있는 것 같긴한데. 쨌든 결혼은 안돼."
"왜요?"
"왜긴. 내 수명을 모르니까 그러지."
"알면요?"
"얼마가 남았던 이번 생은 결혼 안 할꺼니까 포기해."
"..치사합니다."
결혼이라, 서로가 좋아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와서 하기엔 내 수명이 짧다. 게다가 결혼을 하더라도 내가 죽으면 이 여우 혼자 또 있을텐데 차라리 그럴 바엔 이번생엔 안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이번 생만 참아. 다음에 오면 그 땐 네가 나 제대로 꼬셔서 결혼하게 하면 되잖아."
"그럼 그 땐 진짜 결혼 하는 겁니까?"
"뭐, 너 하는 거 보고?"
"그 말 어기시면 안됩니다? 결혼도 지금 당장 못하니 증표라도 하나 얻어갈겁니다."
"증표?" 뭐지, 새끼손가락이나 피로 쓰는 혈서 같은 건 줄 알고 당황했는데 백란이 몸을 일으키더니 체중을 실어 나를 뒤로 넘어트린다.
"??" 놀라서 가만히 있는데 내 손을 꽉 잡아온 여우가 웃는다.
"입 맞출겁니다."
"..어??"
"입 맞추고, 물고, 뜯고 제 거라는 흔적을 다 새겨놓을겁니다. 그 누구도 이제 천호 걸 탐내지 못하게."
여우의 입이 벌어져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다. 순간 무서워서 가만히 있으니 나를 물려던 여우가 행동을 잠시 멈춘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억지로는 싫어요."
"..그게 아니고.."
"그럼요?"
"..네 이빨에 나 목 뚫릴까봐.. 무서워.."
"..예?"
"아니.. 순간 너무 날카로워서.. 뚫리면 어떡해..?"
"..그것이 무서운 겁니까? 제가 이러는 게 무서운 게 아니고?"
"그럼.. 뭐가 무서워야 하는데..?"
..뜬금없는 말에 백란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째 나이가 들어도 이쪽으론 맹하신가. 정말 그 시간 안에 연애 한 번을 안 해보셨다고 놀려야 하나, 아님 여전히 순진하다고 기뻐해야 하나를 생각하다가 백란은 이를 숨겼다. 제 정인이 무섭다고 하시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그냥 놔 줄 생각은 없었다.
"..좋습니다. 무섭다고 하시니."
"그럼?"
"이는 안 쓰겠습니다." 그러더니 백란이 입술로 유단의 목을 문다.
"윽!?" 목의 살갗이 빨리는 느낌이 이상해 밀어내려하니 백란은 그런 유단의 몸을 더 꽉 눌러왔다.
"흐으.. 아, 아파..!" 곧 목에 붉은 자국이 생겨난 것도 모른체 아프다며 툴툴거리는 유단의 미간을 눌렀다.
"이는 무서우시다길래 간신히 참은겁니다."
"..진짜 죽이려고 한 거야..?" 유단이 사색이 되어 자신을 쳐다본다.
..어찌 이리도 눈치도 없고 무지하실 줄이야. 갈 길이 멀겠다고 생각한 백란은 그러다 그만 웃어버렸다.
"예, 제가 천천히 하겠습니다."
"뭘?"
"뭐든지. 다요. 그러니 가시더라도 빨리 오십시오."
백란이 만족한 웃음을 지음과 동시에 눈을 떴다. 이게 실화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가려고 해도 손과 목에 잡힌 느낌이 있는 걸 보니 그게 진짜이긴 했나보다.
"유단아!!"
"유단 형님!" 그 사이 쌍둥이가 폴짝대며 뛰어온다.
"어어, 넘어진다!!"
"안 넘어져!"
"맞아요!"
뛰는 쌍둥이들을 말리려는데 둘의 시선이 유단에게 진득히 따라붙었다.
"왜 그래?"
"목이 왜 그래?"
"목?"
"네, 거기가 빨개요. 뭐에 물리셨어요?"
"물린.."
생각났다. 이거 물린게 아니고 여우에게 빨린거잖아..! 애들한테(?) 이상한 걸 말할까봐 재빨리 둘러댔다.
"물렸어, 이상하게 벌레같은 건지, 괴이같은 건지 자다가 목을 긁었는데 그것 때문인가봐."
"약 줄까?"
"그냥 두면 나을 것 같은데? 근데 왜?"
"아, 그 사장님 기억해?"
"누구?"
"우리에게 맨날 과일 하나씩 주던 과일가게 사장님!"
"응, 알지? 산책 갈 때 마다 보니까?"
"그 분이 단이 네가 혼자면 만나서 차 한잔 하쟤!"
"어때요? 잘 됐죠?? 이 참에 데이트 어때요??"
"데이트라.." 가만 생각하는데 뭔가가 자신의 머리로 올라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아야! 알았어! 안해! 안해!"
"걘 왜 그래?"
"몰라, 내가 가게 일 신경 안 쓸까봐 이러나 봐. 이번생은 글렀어."
"저런.."
둘 다 안됐다는 표정을 짓자 유단은 방금전까지만 해도 종이였던 여우를 머리에서 내려놨다.
"넌 내가 탈모라도 오길 바라냐?" 어느새 그새 다시 종이로 변한 게 얄밉긴 하지만 여우가 한 것 같아서 종이를 다시 책상에 두고 쌍둥이와 같이 가게로 내려갔다. 성격 차분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네. 그래도 그게 나쁘진 않아서 웃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 오겠네." 괜히 중얼거리며 2층의 문을 닫았다. 따뜻한 날이었다.
원래는 평화롭게 늙어죽는 유단이가 보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우리 다니 잘생겼으니까..(?, 몰라 제 눈엔 제일 잘생겼어요) 인간세상에서 인기 많지 않을까? 하다가 인상 조금 사나우니까 어려운 공공재 미중년 생각하고.. 요괴들은 혼자 단이 혼자 늙어가니 혼처라도 구해볼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 단이도 쟤네 걱정 시킬 바에 연애라도 함 해봐? 하다가 그걸 안 여우가 바로 그건 안돼! 하면서 내려오는 게 보고 싶었던.. 망상썰..ㅋㅋㅋㅋ
유단백란아님.. 백란유단임..!! 나이는 잔뜩 먹은 어린애인 백란과 이젠 나이를 어느정도 먹어 여유로운 유단이를 보고 싶었고.. 인간으론 다 있지만(집, 가게, 가족) 연애에 대한 눈치는 없는 우리 유단이도 보고 싶고..!
걍 결과적으로 백란이랑 유단이랑 만나서 쪽쪽대는 거 보고 싶었습니다.. 근데 청소년? 청년으로 보이는 백란과 나이들어 겉이 늙은 유단은 누가 연상이고 누가 연하일까..ㅋㅋㅋ 연상공백란인가 연하공백란인갘ㅋㅋ
그리고 바라는 점은 연애할 때의 백란은 누구보다 질투도 욕심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ㅋㅋ 초딩공인가..? 쨌든.. 이제 진짜로 유단이 살해당할(?) 위협 사라졌으니 행복해라.. 얘들아!!
지금 현재 7권 다 보고 외전 보고 있는데 유단이가 백란이한테서 자신을 지인이나 친구로도 안 보고 있는 게 조금 슬픔.. 단아.. 너네 그 정도면.. 지인이고.. 친구고(?) 부부야...ㅠㅠㅠ(??)
근데 그래도 유단이는 평생 백란을 보면 그 생각은 들지도.. 나는 네가 아끼는 왕자가 아닌데. 나는 유단인데. 나는 평생 그 사람은 못 이기겠다. 하는 생각.. (솔직히 이런 자낮수 맛있지 않나요? 나만 먹니? 이런 젠장..ㅎ..
쨌든.. 오랜만에 버닝해서 즐겁다!! 여러분 모두 반월당과 백란유단을 봐주십쇼!
오래만에 백란유단 보는데 옛날에 같이 파시던 분들이 포타에 계셔서 행복했다.. 제 트위터가.. 해킹당하고.. 그 때 잠시 백란유단 시들해지고 원피스 버닝할 때라 그렇게 잃은 내 트친들.. 흑흑.. 저를 기억하시나요.. 아니에요.. 기억안하셔도 돼요.. 제가 기억하고 있거든요.. 해주신 연성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아는 척 하고 싶은데.. 이분들은 집중적으로 파시고.. 나는 걍 이것저것 다 주워먹는 인간이라.. 아는척하기 죄송하다는.. 그런 말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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